사마모토 리오 소설 퍼스트 러브

2019. 2. 24.

모처럼 날이 풀려 봄이 정말 오는구나, 느꼈던 며칠 전. 미세먼지가 많아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식사를 하고 카페에서 여유 있게 점심시간을 보냈다.


부드러운 카푸치노 한 모금에 안도감을 느끼며 무의식적으로 켠 알라딘앱. 그리고 첫 페이지에 소개된 소설 〈퍼스트 러브〉.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소개를 보고 바로 결재를 마쳤다. 난생처음 소설의 재미를 알게 된 니시 가나코의 〈사라바〉가 나오키상 수상작이었던 탓에 매년 신뢰하고 수상작을 읽는다.


〈퍼스트 러브〉는 아나운서 면접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를 식칼로 찔러 살해한 미모의 여대생 칸나와 그 사건을 파헤치는 임상심리사 유키의 이야기다. 그런데 왜 책 제목이 퍼스트 러브일까. 자신이 살해한 아버지가 딸의 첫사랑이었을까? 이런저런 추측을 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다.


사마모토 리오 소설 〈퍼스트 러브〉 표지


밤 10시에 알라딘 당일택배로 책이 도착한 날. 잠들기 전 도입부를 조금 읽었다. 그리고 맞이한 첫 주말. 정신없이 하루를 보낸 뒤 잘 준비를 마치고서야 소파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정말 간만에 소설에 푹 빠져 감상에 젖다 보니 밤을 다 샜다.


이미 사실이 다 파악된 살인 사건의 진실에 서서히 다가서는 서늘한 이야기를, 진실을 찾아 나서는 유키의 쓰라리고 아름다운 첫사랑 이야기가 떠받치고 있다. 결론적으로 책 제목이 말하는 첫사랑은 칸나가 아닌 유키의 것. 한 문장도 허투루 쓰지 않은 듯한 속도감 있는 사건 전개와 그 사건의 리듬에 따라 유키가 추억에 빠져 마주하게 되는 과거의 세련된 정서. 그리고 복받치는 감정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깔끔한 결말까지. 흠 잡을 곳 없는 완벽한 소설.


내 마음속 한 상자에 쑤셔 넣고 애써 외면하는 나의 거짓된 모습과 비밀. 유키와 칸나처럼 언젠가 나도 그 상자를 열고 마음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날이 찾아오겠지. 따뜻한 봄날, 서툴고 풋풋했던 첫사랑을 몰래 추억하며 성숙한 사랑에 투정을 부리고 싶어지는 이야기다.
이런저런 감상을 다 덮어 두고 추천.


그때 가쇼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때 과연 그는 농담 삼아 우리를 오누이라고 했던 나날들을 떠올렸을까.
하지만 나는 가쇼가 모든 것을 털어놓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별을 보면서 즐거운 표정으로 가몬 씨 얘기를 했던 그가, 그렇게 좋아하는 형에게 상처가 될 말은 할 리가 없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다시 얘기할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렸다. 칸나 씨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