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자와 류에가 말하는 [열린 건축]

2016. 6. 23.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는 처음 클래식 콘서트홀로 기획되었고, 당시 막 프리츠커상을 받았던 일본 건축가 세지마 카즈요와 니시자와 류에가 이끄는 사무소 SANAA 사나아가 설계를 맡아 건축계에서 꽤 이슈가 되었던 걸로 압니다.


설계자와 용도가 바뀐 채 뮤직라이브러리가 오픈하고 나서 그 소식을 알게 되었고, 웹 서치를 하다가 사나아의 초기 계획안을 접하게 되었는데, 괜한 아쉬움이 들더군요. 현재 그들의 생각 일부가 반영되어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열린 프레임’을 가졌지만, 초기 설계안의 숨 막히는 ‘투명함’이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투명함에 비춰보니, 완공된 뮤직라이브러리의 프레임을 뒤덮은 그래픽 작품이 꽤 요란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니시자와 류에 [연린 건축]


"나는 '쉬운 이해'를 중시한다. 직접 쓴 문장도 그렇지만 건축도 되도록 이해하기 쉽고 심플하게 만들고 싶다... 나는 건축의 보편성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 보편성과 마주하는 것은 나에게 이야기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알기 쉽게 만드는 일이다."


사나아 소속 건축가 니시자와 류에의 건축 수필집 [열린 건축]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직후 2012년 일본에서 발간되었던 책을 번역한 것으로, 2007년에 나온 -한국어로 번역출판되진 않은- [건축에 대해 이야기해보자]에 이은 건축가의 두 번째 수필집입니다.


책 내용은 건축 잡지에 게재된 인터뷰와 글에 지극히 일상적인, 다소 무방비 상태의 일기가 덧붙여져 니시자와 류에의 건축관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2010년 프리츠커상을 받은 뒤에 나온 만큼, 프리츠커상에 대한 이야기와 르꼬르뷔지에, 미스 반데어로에, 찰스&레이 임스 등 근대 건축 거장들에 대한 견해가 중간중간 소개되어 흥미롭고, 인터뷰에는 사나아의 선임 건축가 세즈마 카즈요의 견해도 상당 부분 수록되었습니다. 절반은 사나아의 책인 셈이죠.


니시자와 류에 [하우스A]


"우리 (사나아)의 건축은 일반적으로 모두 열려 있고 원래부터 열린 건축을 지향해왔는데, 왜 열린 건축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 이유는 관계성을 만들기 위해서다. 관계라는 것은 끊어버리면 그 이상의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관계를 연결하면 그것을 계기로 다양한 창조적 전개가 발생한다."


책에 소개된 작품 중 가장 ‘니시자와 류에답다’라고 느낀 작품은 잘 알려진 유명 건축물이 아니라, 2006년 작인 ‘하우스A’라는 독신자를 위한 주택이었습니다(다른 작품은 본 적 있으나, 이 작품은 이 책에서 처음 봤네요). 이 전후로 그는 ‘야마모리 하우스 (2002년)’와 ‘가든&하우스 (2011년)’라는 기념비적인 주택 작품을 남겼지만, 한 사람을 위한, 단독주택이라는 심플한 조건이 그의 건축관을 더 도드라지게 드러낸다는 느낌입니다.


평면도를 보면 박스를 어긋나게 이어붙여서 (쉬운 건축을 추구한다고 말했듯 매스가 아주 명쾌합니다.) 외부에 면한 면을 넓혔고 외부는 조경으로 둘러쌌습니다. 창은 일반적인 집에 비해 스케일이 커서 빛이 쏟아지고 거실에도 조경해 두었습니다. 그래서 마치 온실을 보는 듯합니다. 그들이 프리츠커상을 받기 전, 2005년경 프랭크 게리를 포함한 -프리츠커상 심사위원으로 보이는- 단체가 사나아의 신작인 '도와다 시 현대 미술관'을 둘러보고 간 일화가 책에 소개되는데, 아마 하우스A를 설계하기도 한 그당시가 니시자와 류에의 건축관이 성숙한 그 즈음이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도 하우스A를 다시 보게 됩니다.


니시자와 류에 [하우스A] 평면도


"어떤 장소에서든 안과 밖의 차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전체가 정원 같은 투명하고 개방감 있는 공간이길 바라며 설계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투명'도 근대건축에서 보이는 유리와 철로 이루어진 위압적인 투명함이 아니라 오히려 봄의 햇살같이 평온하고 쾌적한 공간을 목표로 했다."


'투명성'이란 철근과 유리라는 새로운 재료가 쏟아져나오던, 모더니즘 건축이 형성되던 근대 건축 시기부터 화두였습니다만, 사나아가 건축에서 드러나는 투명함이란 뭔가 이전과 다르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그걸 구체적으로 설명할 순 없었는데, 이 책에서 명쾌하게 명시해 두어서 가려운 부분을 긁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하우스A 작품을 근대 건축의 대표적인 주택이라 할 수 있는 필립 존슨의 '글라스 하우스'와 비교해보는 것도 좋은 감상이 될 것 같습니다. 글라스 하우스는 엄청난 부지 일부에 조각 작품처럼 투명한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하우스A -를 비롯한 야마모리 하우스, 가든&하우스- 는 주변 맥락과 함께 호흡하며 투명합니다. '시(詩)적'이란 측면에서 렌조 피아노와 비교하게 되는데요, 렌조 피아노가 철저히 계산된 시라면 사나아는 치명적으로 감각적인 시랄까요? 비슷한 시기에 뉴욕에 설계한 휘트니 뮤지엄(렌조 피아노 설계)과 뉴 뮤지엄(사나아 설계)를 비교해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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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본에서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고 막 출판되었는데, 가장 마지막 에세이 한 편을 제외하곤 그 이전에 쓰인 글입니다. 이 책을 읽고서 동일본 대지진 이후로 그들의 건축이 어떻게 성장해 왔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비극적인 사건을 기점으로 삼고서 할 표현은 아닙니다만)입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한국에 유일한 건축작품인 동녘 출판 사옥은 과도기적인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자세히 리서치는 못했지만, 내부는 사나아 답다고 보여지나, 외부는 숨이 턱 막힐정도로 막혀 있죠. 조만간 파주 출판단지에 갈 기회가 되면 한번 답사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