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움까지 시간을 내서 즐겨야 하는 피곤한 시대

2016. 1. 20.

스마트폰을 사용한 이후 음악을 멜론 스트리밍 서비스로 듣습니다. 마치 SNS 타임라인처럼 끝없이 밀려드는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어서인지, 듣고 싶은 음악이 빠르게 변합니다. 스트리밍 서비스에선 '나만의 재생목록이라는 것의 매력이 퇴색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냥 기분에 따라 원하는 음악을 검색해서 듣는 것에 더 최적화된 플랫폼이기 때문입니다.


몇 년간 사용하던 멜론 무제한 스트리밍 계정을 아버지께 선물해 드렸습니다.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매장을 운영하는 아버지는 그동안 라디오를 통해 음악을 들었는데, 얼마 전 '원하는 음악을 듣고 싶다'고 요청하셔서 매장 PC에 멜론을 놓아드린 것입니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악을 검색해 듣는 재미에 푹 빠지신 것 같아 덩달아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대신 저는 매장이 운영되는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멜론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계정을 하나 더 만들자니 월 6,000원이 어찌나 아깝던지요).


  


ADELE <25>

아델 ADELE 의 새 앨범 <25>가 디지털 음원이 아닌 아날로그 음반으로 발매되어 기록적인 판매량을 달성하고 있는 것이 최근 음악계의 큰 이슈인 것 같습니다. 지난 1월호의 어느 패션잡지의 칼럼에서 <25>의 음악적 완성도가 <19>와 <21>에 못미친다는 비평을 읽었는데, 그 칼럼의 저자 역시 상업적 성공은 인정하고 비평을 했습니다. 대략 이런 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상업적 성공은 거두었지만, 음악성은 높아지지 않았다." 어쨌든 스트리밍으로 들을 수 없으니, 저는 mp3로 변환된 <25> 앨범을 구매했고 오래전 사용하던 iPod에 담았습니다.


실시간 스트리밍이 지원되지 않는 환경에서 음악을 듣는 것에는 역설적이게도 어떤 자유로움이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찾는 것에 내몰리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랄까요? 그런 자유를 누리고 있자니 음악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iPod 플레이리스트에는 앨범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이 느껴집니다. 명확히 구분할 순 없겠지만, 앨범은 음악 자체의 완성도를 끌어올린 앨범과, 이벤트성이 강한─다시 말해 스트리밍을 겨냥한─앨범으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LP나 카세트테이프의 아날로그 방식의 음악을 즐길 만큼 음악에 열성은 아니어서 이렇게 오래된 iPod으로 '대안적 아날로그'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음악뿐만 아니라 사진 또한 '대안적 아날로그'을 즐깁니다. 얼마전에 지인에게 미러리스 카메라를 구매했습니다. 아쉽게(어쩌면 다행히) wi-fi를 제공하지 않아서 PC에 유선으로 연결해야 하는 구식 카메라입니다. 스마트폰 카메라보다 더 선명하게 찍힌다는 기능적인 면 때문에 구매했지만, 찍고 바로 수정해서 공유할 수 없다는 점에 매료되었습니다. 스마트폰과 달리 카메라와 iPod은 오롯이 사진 '찍기'와 음악 '듣기'의 한 가지 기능에 충실합니다. 저는 이렇게 한 가지 기능에 충실한─아날로그의 감성이 있는─물건을 사랑합니다. 완전한 아날로그이긴 하나, 제가 사랑하는 책도 '읽힌다'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니 같은 내용이라도 인터넷으로 보기 보다는 책을 구매해서 보고, 책으로 출판되지 않았다면 프린트해서 보는 것을 즐깁니다(낭비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요즘 읽는 책 두 권 <무인양품 디자인>과 <책이 너무 많아>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요즘 회사와 집에서 읽고 있는 책 두 권의 어떤 구절이 떠오릅니다. 회사에서 읽는 책은 <무인양품 디자인>이고, 집에서 읽는 책은 <책이 너무 많아>입니다. 완전히 연관성이 없는 책인데(일본 브랜드와, 일본 작가라는 점을 빼고), 동시에 책 속 한 구절이 생각나다니 묘한 일입니다. 어쨌든 그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무인양품 디자인 37쪽

공기청정기나 에어컨 같이 복잡한 가전은 이미 벽의 일부처럼 주택설비와 일체화되고 있습니다. 테이블 위에 남는 가전제품은 '도구'로서 노출되는, 단순한 기능을 가지고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것에 한정될 거예요. 예를 들어 식빵처럼 크기가 일정한 것을 다루는 토스터 같은 가전은 결코 작아질 일이 없습니다. 반드시 식빵과 같은 크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바뀔 수가 없는 것이죠. 이러한 가전이야말로 무인양품이 개발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불필요한 기능을 가능한 없애고 필요한 기능만 탑재해 적정 가격으로 시장에 제공하고 싶었죠. 이런 가전이라면 해외 시장에서도 반드시 수요가 있을 것이고 가격경쟁에 함모로딜 일도 없을 테니까요.(후카사와 나오토)


제품 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가 기획한 무인양품 가전제품 군│이미지 출처: www.harryhasson.co.uk


'식빵과 같은 크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토스터는 결코 작아질 일이 없다.', '필요한 기능만 탑재한다.'라는 구절이 제가 사랑하는 것들의 감성과 맞닿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제품 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는 가전제품이 생활잡화로 인식되는 지점에 무인양품의 가전제품이 있다고 설명했는데요, 아마 제가 생각하는 '대안적 디지털'과 닮은 부분이 있지 않나요? 다음은 <책이 너무 많아>의 한 구절입니다.


책이너무 많아 37쪽(놀랍게도 무인양품 디자인의 구절과 같은 쪽!)

휴대전화와 메일이 생기고 나서 약속 장소를 정하는 사정은 상당히 변했다. 시간도 장소도 대충만 정해놓고, '그럼 나중에 도착하면 또 전화할게'라는 식이 일반적이다. 그에 익숙해지니 '정말이지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에는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휴대전화의 출현과 함께 타인과 만날 약속을 할 때의 정취 같은 것은 사라졌다.


기다림 역시 지극히 아날로그적입니다. 실시간으로 상대방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지금에야 굳이 지루하게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되었지만, 분명 기다리는 즐거움은 있습니다. 시간과 장소를 정해놓고 조금 늦는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이 즐거운 경우가 있지 않나요? 늦은 사람이 미안해하는 게, 도리어 미안해질 정도로 말입니다. 좋은 풍경을 바라보며 즐거운 사색에 잠기거나 완전히 매료되어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다 보면 '이 기다림은 좀 더 즐기고 싶은걸, 제발 좀 더 늦어라'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기다리는 동안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어진 시대는 여유로움이 없어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굳이 여유로움까지 시간을 내서 즐겨야 하는 피곤한 시대가 되었으니, 시대유감합니다.